근래, <다크 나이트>이후 가장 재미있었던 영화 <인셉션>을 본 후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다시 집어 들었다. 대학시절, '정신분석 세미나' 동아리 만들었을 때 번역서로도 읽기 어렵고, 영어로는 더더욱 어려웠던 프로이트의 저서들이 근래들어 너무도 재미있게 잘 읽히는 데, 이건 대체 뭘까. 하간
<인셉션>에서는 꿈의 깊이(혹은 ‘단계’)에 따라 시간의 속도가 각기 달리 설정된다는 흥미로운 내용이 등장한다. 1단계 꿈에서의 10초는 2단계에서는 3분, 3단계에서는 1시간,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서는 10시간이라는 말이다. 꿈의 단계가 깊어질수록 시간이 길어진다는 이 설정의 모티브는 프로이트의 대표적인 저서 <꿈의 해석>에서 차용한 것이다.
<꿈의 해석> 여섯 번 째 장 ‘꿈-작업’에서는 ‘압축’과 ‘전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기억의 저장 작업 과정의 1차 작업이 ‘압축’이다. 이 과정에서는 언어, 이미지, 소리, 냄새 등 멀티미디어적인 내용물들이 꾹꾹 눌러지게 된다. 많은 양을 저장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압축 과정에서 시간순으로 기록되는 연대기적인 요소들은 거의 떨어져나간다. 내용물들은 중첩되고, 겹쳐진다. 어찌 보면 닥치는 데로 쌓아두고 꾹꾹 눌러서 압축시키는 것과 별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와 같은 압축의 과정을 끝내고 나면 2차 작업이 시작된다. 압축된 내용물을 저장이 용이하도록 모양을 바꾸는 것이다. 이 과정을 ‘전이’라고 부른다. 마치 블록의 모양을 이리저리 끼워 맞춰 가듯이 저장공간에 알맞게 잘 저장될 수 있도록 모양을 바꾸고 비튼다. 공간 효율성을 위해서 더러는 어떤 덩어리들을 절반으로 잘라버리는 ‘훼손’도 이때 발생한다.
꿈이란, 이처럼 ‘압축’과 ‘전이’라는 작업 과정을 통해 원본 확인이 불가능할 정도로 변형되어서 기억을 담당하는 뇌의 세포세포마다 빼곡하게 저장된다.
우리가 꾸는 꿈이 난해하고 황당한 까닭은 꿈의 저장 작업을 통해 원본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뒤틀린 내용물들이 서로 엉켜서 꿈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엄청난 압축 작업 과정에서 연대기적 기록도 모두 삭제되어버렸다. 그런 까닭에 나와는 개별적으로 관계가 있으나, 서로는 결코 안면이 없거나 시간적으로 봐도 서로 만날 일이 없는 다른 등장인물들이 동시에 꿈에 등장하기도 하며 오래 전 세상을 떠난 사람과 엇그제 만난 사람이 서로 같은 시공간에서 뒤엉키기도 하는 것이다.
더러는 꿈에서는 시간여행도 가능하다. 유년 기의 내 모습과 주변의 환경들이 펼쳐지다가 느닷없이 청년기로 점프하기도 하고 영화에서 본 장면들 속에 내가 섞여 있는 꿈도 꾼다.(나는 종종,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는 밤에 하수구를 탈출하는 꿈을 꾸기도 하는데 ‘대체 왜 이런 꿈을?’이라고 자문하다 보면 영화 <쑈생크탈출>의 한 장면임을 깨닫고 피식 웃는다.)
<꿈의 해석>은, ‘압축’와 ‘전이’로 원본이 훼손된 기억을 ‘꿈’이라는 작은 실마리들을 통해 찾아가는 방법에 관한 저술이다. 원본의 내용에는 당연히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유발할 수 있는 기억, 죄책감, 피해의식, 자존감, 감정, 사랑, 미움과 같은 심리적인 것들도 함께 들어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 또한 저장의 과정 중에 멀티미디어적인 내용물들과 함께 압축되고 전이 되어 있게 마련이다.
저장된 기억들은 의식이 잠든 사이에 검열이 헐거워진 틈을 타고 은밀하게 그 내용물들을 꿈속에 풀어놓기 시작한다. 원본이 훼손되고, 연대기도 상실한 내용물들은 마구 흩뿌려 놓은 블록완구처럼 형체를 알아보기가 어렵다. 그 꿈에는 저장된(그러므로 ‘과거인’) 내용물만 등장하는 게 아니라 현재의 욕망도 응축된 채로 섞여 있다. 과거에 관한 향수와 그리움, 과거에 이루지 못한 소원, 욕망에 대한 안타까움과, 하지 말았어야 할 것들을 해 버린 것에 대한 죄책감, 반드시 감추어야 할 비밀들, 고통스러운 기억, 타인에게 드러낼 수 없는 민망함, 내게 상처를 주고 떠난 사랑, 미움과 복수심, 오늘의 나를 있게 부모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내게 더 잘해 주지 못한 데 따른 원망 등이 형이상학적으로 섞여서 한편의 드라마틱한 영상을 만들어 낸다. 누구도 봐서는 안될. 그런 은밀한.
의식 활동 중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이 지점에서다. 의식은 잠이 들었으나, 한편으로는 꿈의 내용을 다시 기록하고 있다는 것. 우리가 그것을 ‘꿈’이라고 부를 때, 그것은 꿈의 내용을 기록하는 제 3의 기록자가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의식이 잠에 완전히 빠진 줄 알고 더욱 설쳐대던 꿈의 활동은, 급기야 잠든 검열관이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로 큰 영상을 만들고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꿈의 왕성한 활동에 깜짝 놀란 검열관이 잠에서 깨어날 때면 허겁지겁 자리를 정리하여 무의식의 수면 아래로 황급히 자취를 감추고, 잠에서 깨어난 의식은 그 중 아주 일부만을 ‘꿈’으로 기억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