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건, 고은
1.
내가 사랑하는, 그리고 평생 사랑하게 될 큰 녀석, 작은 녀석의 소중한 이름이다.
고건이 태어났을 때, 녀석들의 외할아버지인 장인어르신께서는 사위가 손주의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하길 내심 바라셨다. 장인께서 조금(혹은 많이) 서운해 하실 것을 헤아리면서도 나는 녀석들의 이름 짓기를 반드시 내가 하고 싶었다.
큰 녀석의 이름을 고건 이라고 지을 때, 한 때 국무총리를 지냈고 지금은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정치인 고건 씨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녀석의 이름짓기를 위해 고민을 시작할 무렵 그는 김대중 정부에서 민선 서울시장을 지내고 있었다.
당시 고건 씨에 대한 내 이미지는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그의 이미지는 정치인로서 보다는 행정가로 자리매김하고 있었고, 온화하고 합리적인 성품에 청렴함으로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큰 녀석의 이름을 고건으로 지으면서, 나는 고건 서울시장이 오래도록 존경받는 사람이 되길 기원했다. 내 아들의 이름이 비록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냈으나, 노태우(그 앞 대통령들은 말 할 것도 없고)나 김영삼 같은 이름처럼 불명예스러운 이름이 되지 않기를 바란 까닭에서다.
(굳이 욕심을 내자면, 나는 내 아들의 이름이 간디나 김구 선생의 이름처럼 존경받는 이름이 되기를 소망한다.)
정치인 고건 씨에 대한 내 이미지는, 전보다는 좀 흐려졌지만, 아직까지 나쁜 편은 아니다. 순전한 내 욕심 때문이지만, 나는 정치인 고건 씨에 대한 내 이미지가 더 이상 흐려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나는 그가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것을 이쯤해서 그만 두고, 존경받는 청렴한 공직자로 오래 기억되는 명예로움을 선택하기를 바란다.
(지난 2004년 5월, 노무현 정부의 초대 총리를 지난 그가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사태를 잘 수습하고 사표를 냈을 때를 기억한다. 나는 그의 결단이 존경스러웠고 그가 박수받을 일을 했다는 생각에 엠파스에 있던 내 블로그에 "고건 총리에게 따뜻한 박수를"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남겼다.)
자기의 이름을 명예롭게 하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이름에 더해진 명예를 지켜내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평생을 걸쳐 어렵사리 쌓은 명예를 한 순간의 실수나 잘못된 판단으로 더럽혀 지는 것을, 우리는 자주 목격하게 되는데 바로 이런 까닭에서가 아니겠는가.
나는 내 아들의 이름이 대통령을 지낸 사람의 이름과 같은 이름으로 기억되는 것을 별로 바라지 않는다. 정치인 고건 씨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을 크게 보지도 않거니와, 만약 그가 '대권'을 꿈꾸고 있다면, 그것은 무모하면서도 위험한 꿈이라는 것이 명확해 보이기 때문이다. '고건'이라는 이름의 이름값은 민선 서울시장과 참여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로도 차고 넘친다.
나는 내 아들 고건에게는 늘 이렇게 가르칠 참이다.
"건아, 크고 명예로운 이름을 갖는 것은 중요하고 기쁜 일이겠으나 소박하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니 명예의 크기를 떠나 항상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2.
둘째 녀석인 고은의 이름을 지을 때도 역시 오래도록 고민을 했었다. 내심 딸이길 기대했지만 녀석은 딸처럼 아기자기하고 예쁜 아들로 태어났다. 나는 녀석이 딸일 것을 기대하고 이름을 '고운高雲'으로 짓고 녀석이 태어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큰 녀석과 마찬가지로, 나는 녀석이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 녀석의 성별을 거의 궁금해 하지 않았다.)
녀석이 태어나자, 미리 지어놓은 것처럼, 성별을 상관없이 이름을 고운으로 짓는 것을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 그런데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 동사무소에 가 한자 이름을 적으면서 고민에 빠졌다. '雲'이 마음에 걸렸다.
'고운'.. 곱고 이쁜 이름이라고 생각했으나, 나는 내 아이가, 이름처럼, 아니 이름 때문에 바람따라 세상을 떠돌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 휩쌓였다. 출생신고를 포기하고 아내와 함께 장고에 들어갔다. '고운'이라는 이름의 좋은 느낌을 잃지 않은 이름이 없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운'에서 점하나 뺀 '고은'이라는 이름이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다. 더불어 시인 고은 선생의 얼굴도 떠올랐다. 책꽂에서 있던 그의 시집 몇 권을 꺼내 계속 읽었다. 시인으로서, 투사로서의 그의 삶은 이미 잘 알고 있던 터였다. 그는 존경받고 있는 시인이었고, 그의 이름엔 아름다운 시만큼의 명예로움도 더해져 있었다.
그의 시집 <만인보>를 읽으면서 나는 둘째 녀석의 이름을 '고은'으로 짓기로 결심했다. 다만 한자어를 '銀'에서 '訢(화평할 은)'자로 바꿨다. 녀석의 이름을 '고은'으로 짓고 기쁘고 행복했다.
큰 녀석의 이름에 대한 소망과 마찬가지로 나는 고은의 이름도 오래도록 명예로운 이름으로 기억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이름값 하기가 만만치 않은 세상은 늘 걱정스럽다.
스피릿..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