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는 제대로 된 교육을 해달라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것이고, 교사는 교육적 전문성을 통해 불공정한 간섭을 받지 않으면서 교육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교사는 자율적 전문성을 가진 전문직이다. 그런데 교육적 전문성이 담보되지 않은 교육활동까지 교권이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교권 개념의 남용일 수밖에 없다.
밥을 제시간에 못 먹는다고 반성을 쓰게 하는 것을 두고 교원단체에서는 열심히 교육하는 교육 과정이었다고 얘기하는데, 그런 식으로 교권이 기준도 없이 무제한으로 보장된다면 교원단체는 아주 천박하게 교권을 해석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from : <한겨레21> 2006.06.06 간행 - 김창석의 도전인터뷰 "교사가 스스로 무릎 꿇은 것" 중 '교육과 시민사회' 윤지희 공동대표의 인터뷰 내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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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학부모의 폭력 끝에 교사가 학부모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내용의 기사로 큰 파문이 있었다. 대체로 보수언론에 의해 크게 알려진 이 사건의 실체는, 적어도 <한겨레21>의 윤지희 공동대표의 인터뷰에 의하면, 완벽한 작문이었다.
교사가 학부모 앞에 무릎을 꿇게 된 사건의 계기는 이렇다.
1. 교사는 3교대 급식을 하는 초등학교에서 열 살도 안 된 아이들에게 15분 동안 밥을 먹도록 하고 그렇게 못하면 벌로 청소를 하게 했다.
2. 교사는 이 학생들에게 청소 뿐만 아니라 '잘못했습니다'라는 반성문을 50번, 100번 쓰게 했다.
3. 교사는 이 학생들을 방과후 특기적성 교육에도 참여하지 못하게 했다.
4. 아이들은 15분 이내에 밥을 먹기 위해 잘먹지도 못하는 마늘쫑 같은 반찬을 다 씹지도 않은 상태로 삼켜야 했고, 거의 매일 체하고 토하는 것을 3개월 여 동안 지켜봐야했다.
5. 뿐만 아니라 교사는 운동회를 할 때 아이가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뺨을 심하게 때리기도 했다.(아이가 뺨을 얻어 맞을 정도의 잘못이라면 대체 어떤 잘못이길래?)
6. 학부모들은 교사의 이런 명백한 문제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고 교장 선생이 있는 데서 교사가 스스로 무릎을 꿇고 사과를 했으며, 학부모들은 교사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서로 잘 해보자'고 얘기하고 악수까지 했다
보수언론과 방송의 보도는 일의 앞뒤를 다 잘라낸 뒤, '학부모의 강요에 의해 선생이 무릎을 꿇었다'는 점만 강조하여 보도한 것이다. 맥락이 잘린 보도는, 진중권의 말처럼 '사건을 보도'한 것이 아니라 '보도가 사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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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초등학교지만, 나는 '국민학교'를 다녔다. 남도의 작은 도시였고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3학년 때 담임교사는 40대 쯤 된 여자였다. 말馬처럼 뛰노는 게 일상이었던 우리들을, 그 여교사는 교실에 잡아 두는 것으로 다스렸다.
싱그러운 5월의 점심 시간에도, 우리는 운동장으로 갈 수가 없었다. 땀 흘리고 뛰어 논 뒤로 이어지는 수업시간에 졸음을 이기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이유로,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삐질삐질 배어나오는 6월 초입의 점심 시간에도 우리는 바람길을 찾아, 그늘을 찾아 얌전히 앉아 다른 반 친구들이 공차기 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이유는 딱 하나, 5교시 수업을 위해 들어오는 그 여자교사가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땀 검사'를 했기 때문이었다. 이마나 뒷목덜미에 땀이 배어 있는 녀석들은 교탁 앞으로 불려 나갔다. 일렬로 서서 손바닥을 다섯 대, 혹은 열 대씩 맞아야 했다. 전날에도 '걸려서' 불려나간 녀석들이 또 걸렸다고 열 대를 맞았다.
땀이 많았던 나는, 여름으로 갈 수록 불러나가서 얻어 맞는 날이 많아졌다. 땀도 그렇거니와 체질상 땀을 흘리는 나는 잘못이 없었고, 잘못된 것도 없었다. 잘못된 것도, 잘못한 것도 없음에도 나는 자주 맞아야 했다.
다른 기억도 있다. 교실에 있던 그 여교사의 책상위엔 매일 아침 요구르트가 두 개 씩 배달된다. 아침조회를 시작하기 전에 그 여교사는 아이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요구르트를 열어 한 병씩 입에 털어 넣었다. 사십 몇 명이던 반 아이들 중에, 학교에 돈을 내고 매일 우유급식을 받는 아이들이 열 명도 안 되던 시절이었으니, 여교사의 요구르트는 아이들에겐 부러움 그 자체였다.
교련 시간이 있던 고등학교 시절엔 두들겨 맞는 게 일상이었다. 돌이켜 보건데, 명백하게도, 그것은 체벌'이 아닌 폭력 그 자체였다. 좀 한다고 했던 영어과목과, 완전히 포기상태였던 수학 과목의 월말고사, 중간고사, 기말고사의 점수 격차가 수학 시간에 내가 두들겨 맞아야 했던 이유였다.
지방국립대 ROTC 출신인 것을 가문의 자랑으로 여겼던 그 수학 교사는 성적표를 가지고 들어 올 때 매도 네 가지를 준비했다. 손바닥용(대나무 뿌리), 엉덩이용(당구채의 두꺼운 부분), 발다닥 용(당구채의 얍실한 앞 부분), 그리고 야구방망이(둥그런 윗쪽의 두 면을 대패질해서 편편하게 만든). 야구방망이는 엉덩이용 매가 부러졌을 때 사용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하얀 면장갑과 오토바이 탈 때 사용하는 손가락이 중간쯤 없는 가죽장갑도, 그 때 쯤이면 항상 동행했다. 하루종일 학생들을 패야 하니, 손에 물집이 잡히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필수품이었던 것. 그것을 채벌이 아니라, 이를테면 '어떤 작업'이었다.
중간고사 영어점수가 100점이 나오고, 수학 점수가 24점이 나왔던 고2 5월에, 초복에 산으로 끌려간 개처럼 맞아야 했다. 한 30분 동안을 혼자 두들겨 맞았던 것 같다. 두들겨 맞는 포즈도 고상했다. 바닥에 엎드린 후 두 발은 칠판 아래쪽의 턱에 올려 둔 포즈였다. 맞아야 할 매를 다 맞지 못하고 주저 앉으면 매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됐다. 한 번에 오십 여 대를 쉬지 않고 얻어 맞기란 여간해선 쉬운 일이 아니었다.
피가 엉겨붙어 마른 엉덩이 사정은 말이 아니었다. 만신창이가 된 내 엉덩이보다 그렇게 맞아야 하는 것을 상황이 더 무참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학교를 자퇴했다. 다행히도, 내 학부모였던 형님께서 고개를 끄덕여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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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공교육을 받던 시절과 오늘의 상황은 물론 현저하게 다를 것이다. 교사에게 체벌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하는 학생이 있다는 기사도 심심치 않게 접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는 것은 합리적인 '교권'이 우리에게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구심이다.
'교권'이라는 표현 자체에, 우리 교육의 일방적인 성격과 특성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교육은 학교나 교사 일방에 의해 제공되는 일방향적 수혜가 아니다. 교육의 주체는, 당연하게도, 교사(학교)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다.
그러나 '교권'에는 교사(학교)의 권리만 들어가 있지 학생과 학부모의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가르칠 권리'만 있을 뿐이다. 학생과 학부모가 주체로 참여하는 '교원평가제'는 교원단체를 통해(심지어 '전교조'조차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명백히 하고 있다. 수용자(또는 '고객')의 권리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학생이 선생을 고발하거나, 학부모가 학교를 찾아가 교사에게 거칠게 항의하거나 혹은 폭력을 사용하거나 할 때 언론은 "교권이 무너져 간다"고 떠들어 댄다. 교육의 주체로 참여하지 못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감당해야 하는 고통이나 댓가는 늘 편재함으로 관심사항이 못 된다. 성적을 비관해서 자살하거나 급식비를 내지 못해 교사에게 모욕당하거나 학비를 내지 못해 학교를 그만두어야 하는 처지에 몰린 학생들의 고통은 일상적으로 외면당한다.
이럴 때 '교권'이란 과연 무엇을 위해 필요한 것일까.
스피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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