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괴물>과 관련한 김기덕 감독의 신랄한 비판이 결국 김 감독 자신을 헤치는 부메랑이 되는가. 내 보기엔 아니올시다이다. 영화미학을 통한 그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태도는 <악어>에서나 <나쁜남자>에서나 최근 개봉한 <시간>에서나 변함없이 일관된다.
그의 일관성에 비춰보건데 <괴물>에 대한 그의 평가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영화에 대한 그의 일관성에 부합된다. 요컨데 <괴물>을 두고 "한국영화와 한국관객이 최고 정점에서 만났다"고 말한 김기덕의 평가 말이다.
그에게 '영화'란 환타지나 카타르시스 따위를 제공하는 오락거리가 아니다. 그에게 '영화'란 삶과 당대의 부조리를 네거티브적 장치를 빌어 드러내고 폭로하는 미학 작업이다. <악어>에서 부터 <시간>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화작업들의 산출물들이 한결같이 불편하고 찝찝한 것은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직접적이고 신랄하게 요리하여 면전에 들이대는 까닭에서다.
<연합뉴스>에 보낸 이메일 사죄문에서 그는 "한국사회의 어둡고 추악한 모습을 과장하여 관객에게 강요하고 관객들로 하여금 불쾌감을 갖게 했다" 고 사죄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 모두 행복하고 밝게 살고 싶어 하는 관객들에게 저예산 영화의 가난함을 핑계로 관람을 강요하고 자위적이고 자학적인 저 개인의 영화를 예술영화라는 탈을 씌워 숭고한 한국의 예술영화들과 영화작가들을 모독한 점도 깊이 사죄한다". <괴물>의 스토리라인을 들여다 보자(물론, 나는 이 시점까지 영화를 보진 않았다. 다만 기사와 스포일러를 참조할 뿐이다). 가난한 백수와 사회부적응자의 가족에게 일어난 끔찍한 사건을 가족 모두가 힘을 합해 헤쳐나간다는 이야기가 아니던가. 위에 인용한 김기덕의 사죄문은 따라서 '사죄'라 아니라 비판이자 야유다.
그의 이메일을 좀 더 살펴보자. "언젠가 배우 안성기님에게 제 영화 '사마리아'의 아버지 역을 부탁했는데 '어떻게 아버지가 딸을 죽이느냐"며 거절한 적이 있다. 그때는 섭섭했지만 지금 생각하니 제가 영화를 구성하는 사고방식에 심각한 의식장애가 있음을 알았다" 안성기가 틀렸다. 윤리도덕적 잣대에 의하면 아버지가 딸을 죽이는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아버지는 딸만 죽이는 게 아니라 아들도 죽이고, 아내도 죽이며, 심지어는 저를 낳아주신 부모까지 살해한다. 드물게 뉴스에 나오는 일이 아니다. 매일 접하는 뉴스이자 일상이다. 이게 현실이다.
이런 일들은 도덕률 따위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니와 국가 권력이 개입한다고 해도 막을 수 없는 일이다. 왜?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추학하고 잔인하고 더러운 일이라고 침뱉고 외면하기 전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현실이다. 혀깨물어 죽지 않고서는 이 세계를 살아가는 한 피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이란 말이다.
김기덕의 영화들이 드러내는 것들 바로 그 적나라한 현실들이다. 물론 그의 말처럼 '과장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혹은 좀 과장하여) 영상에 옮기는 일은, 그의 발언처럼 "사람들에게 불안한 미래와 사회에 불신을 조장"하는 일이 된다. 언젠가 들어봤던 발언 아니던가?
'독재'를 비판하던 이들에게, '광주'를 이야기하던 이들에게, '사회주의'를 이야기 하던 이들에게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던 이들에게 '미선이와 효순'이를 추모하던 이들에게, '반미'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던 이들에게 최루탄과 방패를 내리찍으면서 했던 그 헤게모니의 논리 말이다. 그 빌어먹을 권력언어 말이다.
그러니까 김기덕은 있는 우리가 늘 목격하고 살아가는 일을 영화로 만들어 스크린에 띄웠을 뿐인데 그것을 본 대다수가 "사람들에게 불안한 미래와 사회에 불신을 조장"하는 일이니 당장 집어치우라고 외치는 셈이다. 아이러니한 자기부정이 아닐 수 없다.
김기덕은 거울을 가져다 비췄을 뿐인데, 거울을 들여다 본 이들은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이 자기가 아니라고 우기는 꼴이다. 대체 누가 사회부적응자란 말인가.
김기덕은 여기서 더 나간다. "맛있게 먹은 음식이지만 똥이 되어 나올 때 그 똥을 피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미처 이해하지 못하고..... (중략)..... 제 말 뜻의 진심이야 어떻든,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생각이 중요한 한국 사회에서.. (후략)"
이어 그는 "내 영화는 모두 쓰레기"라고 강력한 자학을 피력한 후 한국 영화계에서 물러날 뜻을 밝혔다. 그의 말은 진심이겠지만, 그가 남긴 부재는 되려 부재함으로써 존재하는 상황을 연출할 것이다. 물론 그가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스피릿.
덧글 :
- 김기덕이 봉준호 감독에게 매우 정중한 사과를 했는데, 봉 감독의 심정은 어떨까. 김기덕은 참으로 냉정하고 잔인한 사람이다.
- 지난 주 <씨네21>에 <괴물>과 관련하여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쓴 장문의 평문("봉준호의 정치적 커밍아웃"이라는 제목의)이 실려 있다. 나는 화장실에 앉아 똥을 싸면서 그 장문의 평문을 다 읽어냈다. 쓴웃음이 나왔다.
봉준호가 정치적으로 커밍아웃한 것을 정성일은 <괴물>을 보고서야 알았단 말인가. 정성일은 그렇다치고 <씨네21>은 그게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이라고 일곱 페이지의 지면을 할애해서까지 정성일의 '감상기'를 올려줬을까.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정훈이의 만화에나 지면을 더 쓸것이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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