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리기’는 생각과는 달리 꽤 매력적인 운동이다. 사람이 걸어 지나갈 만한 길만 있으면, 운동화 한 족만 있으면, 가볍게 입을 수 있는 반바지와 면티 한 장씩만 있으면 어디서던, 언제건, 누구든 간에 할 수 있는 운동이니 말이다.
‘달리기’는 지루한 운동이다. 한 시간 여 동안에10km를 달릴 수 있다면, 그 한 시간 내내 지루함을 떨칠 수가 없다. ‘대체 무슨 영광을 누리겠다고 이런 짓을 하는 거지?’ 하는 생각에서 시작해서 ‘빨리 달려서 끝내 버리자’는 다짐까지, 달리는 동안 수 십 번도 더 왔다 갔다 하니 말이다. 역설적으로 이것이 ‘달리기’의 매력이 아닐까.
‘오늘이 마지막이야, 이젠 더 이상 달리지 않을 거다. 대체 이게 뭐람!?’ 하는 생각을 하면서 10km를 뛰지만 다음 주가 되면 어김없이 기록단축을 위해 또다시 양재천을 향한다. 전 주의 고통은 까마득하다. 그냥 다시 주로에 서는 설레임만 있을 뿐이다. 몇 번 빼 먹긴 했지만 매주 10km 달리기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초짜 러너’는 달리는 일에 제법 쾌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10km 대여섯 번 뛰고, 한 주 전에 하프마라톤을 겨우 완주한 초짜 러너에게 마라톤 풀코스는 무모하면서도 대단한 도전이 아닐 수 없지만, 실은 그렇게 긴장되지는 않았다. 경험이 없는 탓이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완주는 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있었던 때문이다.
그러나 42.195km는 생각보다 먼 거리였고, 혹독했으며 고통스러웠다. 결코 10km에 비견할 바가 아니었다. 20km 넘어서 까지는 제법 잘 뛰었던 듯싶다. 서울광장을 출발해 청계천변을 지나 한강변을 뛰어 24km 지점에 있는 반환점을 돌 때까지는 한강 경치까지 감상하면서 뛸 정도였으니 말이다.
25km 지점에서 물과 탄수화물(바나나) 섭취를 위해 잠시 달리기를 멈췄다. 19km 지점에서 파워젤을 하나 먹기는 했으나 반환점을 앞두고 허기가 찾아 들었다. 달리면서 갑작스럽게 느끼는 허기는 머리 속이 텅 빈 것처럼 만들었고 발목과 무릎의 통증을 가속화시켰다. 바나나 하나와 물 한잔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먹고 나서 잠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주고, 다시 물 한 컵 집어 들었는데, 아마 그게 탈이었지 싶다.
다시 뛰기 시작했을 때, 물을 약간 더 마신 탓인지 뱃속이 출렁거렸다. 27km 지점인 마포대교를 지나면서 복통이 시작됐다. 뛰는 속도를 좀 줄였으나 복통이 가라지 않았다. 원효대교를 앞두고 빠른 걸음으로 전환했다. 다시 뛸려면 어쨌거나 복통을 좀 가라앉혀야 했다. 원효대교를 지나자마자 다시 뛰기 시작했다. 한강철교를 지나면서 달리는 걸음이 다시 느려졌다. 동작대교가 저만큼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복통은 가라앉았는데 금새 탈수증세가 나타났다. 30km 지점에서 물을 마시지 않고 달린 게 탈이었다.한강공원에 있는 매점으로 뛰어가 이온음료를 하나 사서 마셨다. 아, 역시 꿀맛.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번엔 반포대교까지는 충분히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33km 지점인 반포대교를 아래를 지나려니 오르막길. 아, 어쩔 수 없었다. 오르막길을 뛰어서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허리를 숙이고 빠른 걸음으로 자세를 바꿨다. 오르막이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뛰기 시작. 잠수교로 진입했다. 가끔 차만 타고 다녔던 길을 두 발로 달려 건넌다는 게 신기했다.
잠수교도 역시 오르막이었다. 겨우 뛰어서(걷는 것처럼 뛰어서) 오르막을 올라 챘다. 발목이 저려서 다시 스트레칭. 흐르는 시간이 아쉬웠지만 스트레칭을 해 주지 않으면 도저히 뛸 수 없을 것 같아서 1~2분 동안 스트레칭을 계속 해 줬다. 다시 내리막길. 잠수교를 벗어나 35km 지점에 이르자 다시 오르막길.-_-; 물을 한 잔 마신 후, 오르막을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아서 걸음이 저절로 느려졌다. 좀 처량한 생각이 들었지만 오르막은 일단 걸었다. 뛰어 오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발가락 마디마디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극심한 통증 상태. 김 석 원장님의 말씀이 문득 떠올랐다. “마라톤 풀코스는 고통 참기 대회다” 실감이 났다.
37.5km 지점까지 다시 뛰었다. 소변이 마려워서 시민공원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으나 일을 볼 수가 없었다. 방광에도 아리는 듯한 통증이 있었다. 에라 그냥 뛰자. 4시간 3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걷지 않고 뛴다면 충분히 5시간 내에 완주가 가능한 거리였다. 5시간 내 완주를 목표로 하는 페이스 메이커가 뒤 따라오고 있었다. 혼자 뛰는 것보다 여럿이 뛰는 게 훨씬 낫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속도를 늦춰 페이스 메이커 뒤를 따라갔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페이스 메이커가 생각보다 느리다. 이 속도라면 다섯 시간을 넘길 것 같았다. 다시 페이스 메이커를 앞질러 뛰어 나갔다. 2km 정도 남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한결 가벼웠지만 몸뚱아리는 천근만근이었다. 무엇보다도 내 발목과 무릎의 관절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가득했다. ‘관절들아, 주인 잘못 만난 탓이려니 해라’
1km쯤 남으니 골인 지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길가에 코스모스가 흐드러졌다. 막판이 언덕길이었지만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대장님과 김준호 사범이 저만치서 손을 흔들며 격려를 하고 있었다. “전 속력으로 질주해요!” 드디어 골인 지점. 스톱워치 시계를 보니 4시간 57분. 골인 지점의 매트를 밟으니 뭔지는 모르겠으되, 뭔가를 해 냈다는 생각에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갑자기 드는 생각.
“살다 보니 별 걸 다 경험하는군”
이렇게 끝난 생애 첫 마라톤 풀코스는 특별하고 감격적인 경험이었다. 달리다 보면 육체의 고통보다는, 육체의 고통에 쉽게 굴복해 마음을 헌납해 버리고 마는 불성실한 타협이 자주 손을 내민다. 그 손을 맞잡아 호응을 할 때, 육체는 편해지지만 마음은 갑자기 불편해 지는 것을 경험한다.
살아가는 일이 대체로 그런 듯싶다. 고통스러움은 타협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맞짱 뜨거나, 이겨내고 밟아야 하는 대상임에도 수시로 타협의 수월함에 정신을 내 맡긴다. 실패의 반복이다. 성공도 경험이고 실패도 경험이지만, 타협으로 인한 실패의 경험이 잦을 때, 살아내는 일은 생기를 잃는다. 그러고 보면 실패도 ‘좋은 실패’와 ‘나쁜 실패’로 나뉘는 것 같다.
초짜 러너가 달리기를 하면서 얻게 되는 것은 단순히 체력의 향상만은 아니다. 내 경우는, 달리기 통해 살아가는 일의 진정성을 배운다. 우선 요령을 피울 수가 없다. 10km를 뛸 때, 일단 반환점까지 가면 뛰건 걷건 간에 골인지점까지 들어와야 한다. 도중에 그만 둘 수가 없다. 그만 둔다고 해도 골인지점까지는 어떻게든 와야 하기 때문이다. 뛰어서 오건, 도중에 달리건 간에 어쨌거나 10km는 경험한 셈이 된다.
몇 번 실패했더라도 10km를 다시 뛰기 위해 주로에 섰다면, 이미 그 전의 실패는 아무 의미가 없다. 실패를 했음에도 주로에 다시 선다는 것 자체로, 이전의 모든 실패를 극복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살아내는 일이 도전과 실패의 경험 축적을 통해 전진하게 된다는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진리를 달리면서 실감한다. 역사가와 명망가가 남긴 어록에서가 아니라 달리기를 통해 체득하게 되는 까닭에서다. 실패와 고통이 없으면, 인생이 바뀌지 않는다.
11월 4일. 중앙마라톤에 두 번째 풀코스 도전장을 냈다. 자신이 있는가. 없다. 자신이 없는가. 있다. 다만 포기하지 않고 완주할 수 있기만 바랄 뿐이다. 그 고통스러운 다섯 시간 동안의 달리는, 역설적으로 마음을 가장 평온하게 해 주었다. 왜? 살면서 다섯 시간 동안 한 가지의 생각만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순수하면서도 순결한 그 한 가지의 생각. 육체가 고통스러울수록 생각은 더욱 뚜렷해졌다. ‘완주하자. 완주해서 끝내자’
두 번 째 도전에서는 35km 지점까지 걷는 일 없이 뛰어 보는 것. 그것이 목표다. 부디 가능하기를.
스피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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