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떤 것은 기억에 남고 또 어떤 것은 가슴에 남는다. 기록이 존재함으로 기억에 남는 어떤 것의 일부는 가슴에까지 남지 않는다. 가슴에 남아 있는 모든 것이 기억에까지, 기록에까지 남겨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중 어떤 것들은 기억에, 기록에 없음에도, 그냥 덩그러니 가슴에 남아 있다. 대체로 그것들은 멍울인체로, 아픔인체로, 슬픔인체로, 고통인체로, 그리고 그 자체로 덩어리마냥 가슴에 남아 있다. 풀어헤칠 수도, 설명할 수도, 내비칠 수도, 끄집어 내어 드러낼 수도 없이 그냥 가슴에, 그냥 그 자체로 남아 있다. <2>
80년 5월, 피비린내 나는 빛고을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에 남아 있는 어떤 것들이 그럴 것이다. 그들의 빛고을은, 그들의 아버지들, 그들의 어머니들, 형제와 자매들, 벗들과 이웃들이 쏟아낸 피로 반사된 피빛들이 울거진, 바로 그 빛고을이었다. 그곳이 빛고을인 것은, 그곳이 세계로부터는 완전한 격리와 암흑으로부터는 완벽한 포위를 경험한 이유때문이 아닐까. 빛은 빛이 없는 곳에서야 비로소 빛이 아닐 것인가. 빛을 빛으로 인식하는 이들은 빛이 빛인 이유를 알지 못한다. 빛이 빛일 수 있는 것은 빛의 부재를 경험한 자들에게서나 가능할 것이다. 부재로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부조리한 존재미학이라니. <3>
80년 5월 이후로 모든 5.18은 그 빛이 바랬다. 80년 5월 이후의 모든 5.18은 단 한번 존재한 후 영원한 부재 속으로 자취를 감춘 5.18의 존재를 증명해주지 못한다. 그 어떤 5.18도 80년 5월에 죽은 이들을 살려내지 못하는 것처럼. 그것을 기억하려는 이들은 5.18을 기념하겠지만, 그것을 가슴에 담고 있는 이들은 5.18이 아니어도 암흑의 빛고을에서 죽어간 이들의 묘역을 찾아 가슴을 후벼파면서 통곡한다. (기념하는 자들의 자리와 통곡하는 자들의 자리가 같을 수가 없다.) 그곳은 민주화의 영령들이 묻혀 있는 게 아니라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와 누이들, 그리고 벗과 이웃들이 묻혀 있는 까닭이다. 그들이 통곡하는 것은 그들의 부재가 서럽기 때문이다. <4>
광주는 그렇게 그들의 가슴에 응어리진 한으로 남겨져 있다. 그들의 죽음은 그들의 책임이 아님으로 더욱 무겁고 슬프다. 그들의 죽음은 우리를 대신한 것임으로 비통하다. 우리모두는 80년 5월 광주에서 죽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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